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기독교 신앙과 카오스 이론, 성경 속 혼돈과 질서에 대해서

by onlyhim1 2023. 6. 27.

목차

    반응형


    모든 복잡한 유기체 속에는 질서가 있다

    인류는 항상 진보하고 문명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다. 복잡하고 다양한 최첨단 시대로 갈수록 아이러니하게 인간은 더 게으르고 퇴색되어 가고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더 많이 만나는 듯하다. 이처럼 거대한 자연의 유기적 활동은 인간의 힘과 지혜로는 예측할 수 없는 복잡계의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복잡성과 다양성 속에 어느 정도 일정한 질서와 법칙을 갖고 있다. 이 규칙성과 단순성을 가진 질서와 법칙이 새로운 생명을 낳아 오래도록 유지하게 한다. 이것을 ‘결정론적인 카오스’ 또는 ‘카오스 이론’이라고 한다.
    신학 분야에서 카오스 이론은 인간의 삶과 역사가 미래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복잡성을 갖고 있으면서 그 안에 감춰진 하나님의 섭리와 손길로 질서와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서 이 이론은 혼돈에서 천지가 창조되었다고 보는 창세기 1장부터 시작한다. 또한 역사 속에서 혼돈 세력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활동도 카오스 이론을 증명해준다. 이 책은 카오스 이론을 성서 해석의 한 틀로 활용하여 기독교 신앙을 재정립하려는 목적으로 쓰였다. 성서 중에서 카오스 개념과 긴밀하게 연결된 본문들을 찾아 카오스 이론의 중심 내용과 기본원리를 적용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본문은 혼돈에서 창조되었다고 보는 창세기 1장 2절 말씀이다.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 활동으로 인해 질서정연한 우주가 생겼다고 설명함으로써 카오스 이론의 핵심을 잘 나타낸다. 시적인 언어로 혼돈 창조 개념을 표현하는 욥기나 잠언도 하나님의 창조 활동이 무질서와 혼들을 질서 있고 조화로운 세계로 만들었다는 공통된 시각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주변 지역의 창조신화들도 우주의 시작을 혼돈으로 묘사하며, 이 혼돈으로부터 우주 만물이 생겼다고 보고 있다. 고대 중국과 한국 역시 혼돈과 무질서가 창조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는 큰 틀에서는 차이가 별로 없다.

    카오스 이론이 생겨난 배경

      그렇다면 이 카오스 이론은 어떻게 형성이 되었는지 설명하겠다. 카오스 이론이 생겨난 배경은 17, 18세기 뉴턴을 비롯한 여러 천재적인 학자들이 놀라운 과학적 성과를 이룬 시기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에 이뤄진 과학 발전은 어떤 현상이건 분석하고 파헤치면 다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요소 환원주의적인 사고나 하나의 원인으로 하나의 결과가 발생한다는 단일결정론적인 사고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이런 결정론적인 사유는 몇 안 되는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모든 문제는 과학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20세기 초 뉴턴 역학의 한계를 지적한 푸앙카레가 삼체문제를 제기함으로 근대 과학의 결정론적이고 기계론적인 세계관에 근본적인 한계를 발견하여 카오스 이론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됐다.
    미시세계만이 카오스 이론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요소 환원주의로 설명할 수 있는 거시 세계의 기계론적이고 결정론적인 단순계도 사실상 복잡계의 일부일 뿐이다. 모든 현상들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단순계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서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아 개별적인 현상들이 단순한 결합 이상의 의미를 주는 복잡계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예측 불가능한 날씨의 변화, 태풍의 진로, 강물의 흐름, 다양한 음악의 세계, 사람의 두뇌 활동 등이 있다.
    고대 근동의 창조신화에 나타나는 카오스 이론을 보겠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중심으로 하는 바벨론의 창조신화는 ‘에누마 엘리쉬’로 알려져 있다. 아무것도 창조되기 이전의 상태를 제각기 담수와 염수를 상징하는 압수와 그의 아내 티아맛 및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뭄무(수증기 또는 안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에누마 엘리쉬는 본래 우주의 기원과 그 형성에 관한 우주론적인 관심사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함무라비 대왕의 정치적 부상으로 인한 새로운 세계 질서의 형성을 신화적인 용어로써 해설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창조신화이다. 압수와 티아맛의 자손 인 마르둑이 태초의 혼돈을 상징하는 원시 바다의 세력을 정복함으로써 창조신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를 통해 고대 바벨론 사람들은 혼돈에서부터 우주 만물의 창조가 이뤄졌다고 보며, 창조신 마르둑에 의해 혼돈이 제거되고 질서와 평화가 이뤄진다고 생각함으로써 혼돈이 단순히 혼돈 자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와 질서를 낳는 혼돈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세계 창조신화 속에 내제돼 있는 카오스 이론

    고대 중국과 한국의 창세신화에 나타나는 카오스 이론은 이러하다. 현재 남아있는 중국의 창세신화는 크게 『장자』,『초사』, 『회남자』, 『삼오역기』와 『오운역년기』이 네 종류의 문헌에 단편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 네 문헌들에 담겨있는 창세신화들은 우주 창조가 몇 개의 단계를 거쳐 이뤄지는 것으로 본다. 그 단계는 대체적으로 혼돈→천지개벽→인류의 탄생→문명의 발생순을 따르는 바, 이를 더 압축할 경우 우주만물이 혼돈의 상태로부터 만들어졌다는 공통된 시각이 도출된다. 한국의 창세신화는 다양한 신화를 담고 있는 『삼국유사』와 같은 책에 실린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사회, 특히 무속 사회에서 전승되어 온 구전 무속신화에서만 폭넓게 발견된다. 1960년대 말 『규원사화』라는 역사문헌이 발견되면서 한국의 창세신화가 문헌신화로도 존재한다는 것이 부분적으로 확인되었다. 천하 만물이 혼돈에 둘러싸여 있을 때 무량한 지혜와 능력을 가진 환인이라는 신이 나타났다고 서술하며, 혼돈으로부터 우주 질서가 생겨났고 신성한 힘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절될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 함경남도 함흥의 창세가는 천지가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스스로 생겨났는지는 모르나, 스스로 생겨난 미륵에 의해 하늘과 땅이 분리되면서 창조가 본격화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해와 달이 두 개씩 있던 처음 상황이 혼돈과 무질서를 가리키는 것이나 다름없음을 알려준다. 두 개의 해와 달로 인해 혼돈과 무질서가 생겨났다는 개념은 제주도 초감제의 『천지왕본풀이』와『베포도업침』 에도 나타난다. 이 해와 달을 하나씩 제거함으로써 혼돌과 무질서를 제거하고 질서를 세웠다는 인식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들 사화에서 태초의 상황을 땅과 하늘이 분리되지 않은 암흑의 상태였으며, 해와 달이 두 개씩 있어 인간의 생존이 불가능했고 사람과 식물, 동물 등 만물이 구분되지 않은 혼란한 상태였다고 보고 있다. 결국 천지 분리와 일월 조정 그리고 대별왕이 인간 질서를 바로 잡음으로써 태초의 혼동과 무질서가 정리된다. 태초의 혼돈과 무질서가 이처럼 단계적으로 질서 있는 세계의 모습을 갖추어간다는 것은 우주 만물의 기원과 창조에 관한 창세신화들의 기본 설명이 불확정성의 원리와 복잡계의 과학에 기초한 현대 과학자들의 카오스 이론과 크게 다를 바 없음을 의미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창조신앙과 카오스 이론은 이러하다. 고대 이스라엘의 정경인 구약성서에서 혼돈 창조 개념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본문은 창세기 1장이다.  야웨 하나님이야말로 우주 만물을 창하신 분임을 널리 알리고 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창조 사역이 혼돈과 무질서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밝히며, 바벨론 창조신화에서처럼 혼돈 세력이 신적인 존재로 나타나거나 창조신과의 투쟁이라는 이원론적인 개념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는 야웨 신앙이라는 유일신 사상에 의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동시에 창조세계가 하나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한다. 출애굽하는 장면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어둠의 세력을 제거하고 그 혼돈으로부터 질서와 생명을 만들어내는 하나님의 우주적이고 역사적인 창조활동이 일어났다고 본다. 이는 카오스 이론에서 말하는 자기조직화의 원리에 상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주창조의 근본이론은 카오스 이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 근동이나 중국, 한국의 창조 기사가 공공연하게 태초의 우주를 혼돈과 무질서 상태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태초의 혼돈 상태에 대한 묘사가 전 세계의 모든 창세신화들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요소임을 고려한다면, 태초에 우주에 대한 옛 사람들의 평가와 인식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의 근본 바탕이 혼돈과 무질서에 근거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구약성서에서 아브라함에서 시작된 야곱의 혈족을 통해 하나님께서 창조 안에 드러난 계획을 성취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 계획을 성취하는 데 사용하시는 도구에 해당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집트의 새 왕은 생명을 말살하는 정책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 창조 사역에 맞선다. 그 까닭에 하나님은 노예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심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게 하신다. 오직 하나님을 섬길 때에만 속박 없는 섬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서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바, 오로지 그럴 때에만이 이스라엘을 포함한 피조 세계 전체는 하나님께서 애초에 원하셨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와도 같은 연약한 자기 백성을 혼돈의 상황에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그 혼돈 속으로 들어가시기도 했다. 이것은 뒤죽박죽되어버린 듯한 혼돈의 상황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원이 가능케 되는 전제 조건에 합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 속에 들어가심으로써 그들이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를 깊이 느끼신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고통의 경험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행동은 단순히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과 동시에 생명과 복을 위한 땅의 선물을 포함한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구원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어떤 것으로부터의 성격을 가질 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는 이방 민족들을 혼돈 세력으로 묘사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곧 하나님의 창조 질서 내지는 역사의 충만한 의미를 위협하는 세력임을 암시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죄악을 심판하고 그들을 정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사용하시는 진노의 채찍이라는 점에서, 구원과 희망의 미래를 예견케 하는 혼돈 세력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혼돈 개념의 역사적인 적용 역시 인간 역사 속에 혼돈과 무질서가 그 안에 이미 질서와 규칙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카오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삶에서 적용하는 카오스 이론

    인간의 삶에서도 카오스의 이론이 적용될 수 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해 보이는 요셉의 삶 속에서 오로지 하나님의 섭리만이 확실하게 드러나며 로마서에 있는 말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이 떠오른다. 모르드개 역시 우연히 왕궁 문지기로 있으면서 우연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움직인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인간 세상에는 자신의 이성과 능력으로 깨달을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인간의 삶과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의뢰하며, 하나님 경외하기를 힘쓴다. 이것은 결국 아무리 많은 지혜와 지식을 갖고 있어도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을 경우에는 그 모든 지혜와 명철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지식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귀한 것은 복잡계의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는 인간 지혜의 한계를 올바로 인식하고 야웨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전도서에서 말하는 가장 바람직한 삶은 주어진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채로, 최대한 자신의 삶을 기뻐하는 데에 있다. 기뻐하며 선을 행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며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다.

    카오스 이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광야의 혼돈에서 나타나는 카오스 이론은 이러하다. 광야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한편, 인간이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곧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안정과 풍요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부족과 결핍의 장소에서 이뤄진다. 그러므로 혼돈과 죽음의 장소가 변하여 새로운 탄생과 생명의 장소가 되게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범죄로 인해 약속의 땅을 빼앗겼지만 풍요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결혼 예물에 해당하는 새로운 땅을 광야에서 주실 것이다. 이러한 광야신학은 호세아와 그의 영적인 계승자 예레미야에서도 발견된다. 광야는 심판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의 은총에 의한 구원을 위한 자리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불순종이 광야를 매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뜻한다.
    혼돈의 절정인 죽음에서 생명의 결정체인 부활, 즉 죽음-부활의 주제에도 카오스 이론이 반영되어 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구원이 어떠한 것인지 설명하기 위해, 중상 입은 자의 치료로부터 죽은 자의 부활로 그 개념을 풀어내고 있다. 포로로 잡혀있는 당시 사람들이 경험하여 잘 알고 있는 죽음-부활의 상황을 신학적으로 재해석하여 그가 진정으로 중요시 했던 계약 백성의 죽음과 부활로 변형시킨 셈이다. 그는 포로민들의 우상행위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주요 관심사는 포로민이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게 될 것임을 널리 알리는 데에 있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완성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