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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만나다, 데미안

by onlyhim1 2023. 11. 3.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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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순과 궁금증을 침묵했던 시대에 날아든 통찰자

    부유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싱클레어는 개인적인 주관없이 그저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듣고 봐온 기독교리를 따르며 선하게 살아가는 아이였다. 라틴어 학교에 다니는 중에 만난 프란츠 크로머는 난폭하고 불량한 친구다. 싱클레어는 불량한 프란츠 무리와 어울리고 싶어서 이웃집 사과를 훔쳤다고 거짓말하다가 프란츠에게 협박을 당하며 돈을 갖다 바쳐야 했다. 그러다 라틴어 학교로 전학온 데미안을 만나게 되고 그는 싱클레어가 프란츠에게서 해방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후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편견을 뛰어넘는 사상에 빠져든다. 성경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을 예시로 가인을 옹호하는 그의 관점은 싱클레어가 그동안 배워온 기독교적 관점을 뛰어넘어 더 자유롭고 더 파격적인 생각을 하고 더 자신을 솔직히 들여다 보는 계기가 되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큰 영향을 받았고 더 깊이 그와 교제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파격적이어서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한동안 데미안을 멀리했고, 데미안도 이사를 가서 더이상 만날 수 가 없었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술과 색욕에 빠져 방황하게 된다. 하지만 어렸을 적 부터 그의 안에 내면화 되어온 기독교적 도덕성은 그의 타락과 방탕함을 스스로 책망하고 좌절하게 했다. 하지만 이미 끊을 수 없는 중독이 되어 쾌락과 절망은 수레바퀴 돌아가듯 반복되었다. 마치 내면과 외면이 다른 사람인 듯 했다. 그렇게 혼란을 겪고 있을 때 우연히 교회 안에 오르간 소리를 듣게 된다. 오르간 소리는 싱클레어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었고 싱클레어는 홀린 듯 오르간 소리가 들리는 교회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데미안을 대체할 만한 선생, 피스토리우스를 만난다.
     

    틀을 깨뜨려야 만날 수 있는 진정한 나와 나의 내면

    피스토리우스는 목사의 아들로 그 역시도 촉망받는 목사였지만 어느 순간 회의를 느껴 스스로를 세상과 고립시킨 채 그동안 느낀 모순을 직면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선과 악을 동시에 갖고 있는 신 아브락사스에 대해 알려준다. 신도 동시에 갖고 있는 선과 악이 사람에게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동안 신을 사랑하면서 쾌락에 빠져 신을 의심하고 멀리하고 싶었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매일같이 피스토리우스의 집에 들려 그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아브락사스의 진리에 대해 깨닫게 되던 중에 그와의 갈등이 시작된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다시 데미안이 그리워진다. 그리운 마음에 데미안에게 편지를 수많은 편지를 썼느데, 어느날 그에게서 답장이 온다. 그 답장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새는 알을 뚫고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 역시 아브락사스에 대해 알고있음을 알게된다. 우연히 다시 데미안과 조우하고 그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가 그토록 바라고 그리워했던 꿈 에서 만난 여인을 실재로 만나게 된다. 그녀는 바로 데미안의 엄마 에바 부인이었다. 깊은 통찰을 가진 그녀에게 싱클레어는 단숨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렇다 싱클레어가 사랑한 여인이었다. 에바 부인도 싱클레어의 이끌림에 응하고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싱클레어가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하며 둘은 만날 수가 없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중에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찾아가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며 앞으로 자신이나 에바 부인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땐, 내면 깊숙이 자신을 찾으면 만날 수 있으니 자신을 찾으라고 한다. 싱클레어는 이제 거울로 스스로를 보면 내면 깊숙이 자리해 있는 데미안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둘의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하나가 되어있었다.
     

    외면과 내면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신과 인간 본연의 내면을 향한 갈망 중 후자를 택한 싱클레어. 종교는 부모님에게서 온 좋은 유산이자 습관이었고, 자신을 돌아볼 틈도 없이 도덕적이고 바른 인간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맹목적인 프로테스탄틴이 돼어 신을 따랐던 그 시대에 나는 누구고, 어떤 사람이며,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언제 행복한가에 대한 고민은 은연중 불경건하며 반항적이며 나태한 것이라 여겨졌을 것이다. 나에 대해 확실히 정의내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은 허공에 발을 딛고 걷는 것 같았을 것이다. 신을 따르기에 앞서 '신을 따르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자아를 찾고자 하는 갈망이 이 책을 써내려 가게 했을 것이다. 신께서도 "너 자신이 누구인지 아니? 아니 궁금해 한 적이 있니? 어떤 캐릭터이며 어떤 사명을 갖고 있는지 아니? 너는 너를 제대로 사랑한 적이 있니?"하고 물으신다면 우리는 그때서야 맹목적인 신앙을 원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 떠날 것이며 스스로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신과 더 견고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싱클레어는 자아를 찾기 위한 깊은 열망으로 데미안과도 만나고 피스토리우스의 제자가 되기도 했다. 그들과 깊은 대화를 통해 내면의 깊은 세계를 통찰했다. 때론 알콜의 힘을 빌려 주정뱅이가 되기도 했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방탕이 아니라 도덕적 규율에 얽매여 살던 싱클레어에겐 용기이며 진리를 향한 발걸음이라고도 생각한다. 맹목적인 삶에서 나와 이곳에도 있고 저곳에도 있는 진정한 진리를 찾고자 하는 깊은 열망인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진리여서 딱딱한 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찾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또 그가 있는 그곳에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싱클레어가 에바 부인이나 데미안을 찾을 때 처럼 말이다. 가인의 증표라는건 신의 긍휼함을 받은 죄인에게 내려주는 신의 은총같은 개념일 것이다. 데미안과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에게 새겨진 가인의 표를 알고 있기 때문에 싱클레어가 마음 속으로 그들을 생각하기만 하면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만날 수 있다. 가인의 표가 그들을 이어주는 것도 있지만 그들은 싱클레어를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기 때문이다. 사랑은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진정으로 사랑하면 상대방을 끌어 당긴다. 끌어 당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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