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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에 꿰뚫는 기독교 역사, 손쉽게 술술 읽히네!

by onlyhim1 2023. 5. 13.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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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밌고 재치있는 문장력으로 역사를 지루하지 않게

    <하루만에 꿰뚫는 기독교 역사>는 기독교 역사에 대해 연대기적 역사 서술방법으로 기록한 책이다. 1세기부터 있었던 기독교 박해, 권력에 집착하는 교회의 부패와 물락, 무지한 신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전통적 교리 안에 갇혀 있는 신앙의 한계로 인한 계몽의지 등이 200여 페이지 안에 잘 정리되어 있다. 또 각 장마다 꼭 알아야할 용어와 기독교 역사와 세계 역사의 연대표가 있어서 교회 역사가 있던 시기 세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비교하며 전체적인 역사를 파악할 수 있다. 처음에는 교과서처럼 딱딱하게 느껴졌는데 오히려 처음보는 사람도 더 쉽게 기독교 역사를 배울 수 있어 이와 같은 탁월한 구성력에 무릎을 쳤다. 또한 책 사이사이 묵상해볼 만하 퀘스천이 던져져서 누구나 더 깊게 역사연구를 할 수 있게 만든다. 이것은 역사를 답습하지 않게 하려는 작가의 처절한 노력의 결과이며, 우리가 반드시 지향해야할 과정이다. 또한 역사의 각 부분에서 다양한 이단교리가 나오는데 이것이 성경의 어떤 본문에 위배되는지 각 본문도 친절하게 나와있어서 보다 성경 중심적으로 이단 교리가 왜 틀린지 직접 비교하며 연구해 볼 수 있다. 또 각 장의 마지막에는 과거 복음이라는 합리화로 저지른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어야 하는지 그 중점을 꼬집어 시사해주고 있다.

    박해로부터 신앙을 지켜온 기독교 역사

    기독교 역사는 AD 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예수의 탄생부터 시작된다.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교회에 동등한 권위를 부여한 이후, 로마 제국은 유대교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었기에 복음 전파가 용이했다. 하지만 AD 64년 네로 왕이 로마 화제사건의 책임을 소수집단인 크리스천에게 뒤집어 씌웠고 그 사건을 기점으로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당시 로마에서는 기독교가 비호감적 종교였다. 다른 신들을 거부하고 하나님만 섬김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결국 AD 70년 예루살렘은 로마에 함락되고 본격적인 크리스천 박해가 일어났다. 폴리갑과 저스틴이 그 시대 순교자 중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깨달음은 신자들이 기꺼이 순교의 길을 가도록 했다. 그러다 3세기 초 기독교 안에 이단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스도는 영이며 육체를 심각하게 부정하는 영지주의와 마르크스 주의는 기독교 집단 안에 영향을 끼치며 분열을 초래한다. 그 덕분에 크리스천이 믿는 신앙의 보편적인 틀을 잡기 시작했다. 로마 제국 안에 모든 교회들의 합의하에 통일된 하나의 정경을 승인하고, 지금 사도신경이라는 신앙의 규칙이 생성됐다. 기독교 진리를 보존하기 위한 대도시 감독의 권력이 급 부상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박해의 설움이 점점 풀려가는 대반전의 역사

    4세기 후반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통해 예수는 인간의 정신을 갖고 있지 않다는 아폴리나리우스주의를 탄핵한다. 데오도시우스는 기독교를 로마의 공식 종교로 선포하여 교회는 국가의 관심과 힘을 입어 부패될 수 도 있었지만 암브로스, 크리소스톰 그리스 어거스틴과 같은 책임자들이 기독교 본질이 흐려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5세기 초 예수의 인격 논쟁(양성론, 단성론)은 에베소 공의회로 시작하여 총 4차례에 걸쳐 7세기 후반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까지 이어졌다. 5세기 중반 로마에 야만족이 쳐들어오기 시작한 시대를 중세시대라고 하는데 그 중 프랑ㅇ크족은 기독굘ㄹ ㅂ다아들여 자신들이 정복한 땅을 로마 교황에게 바치기도 했다. 7세기 초부터 시작된 이슬람교는 갈수록 득세했고 8세기가 되기까지 유럽의 많은 나라를 정복했다. 니케아 신조에 아들이라는 단어를 수정하며 동서로마 교회가 분열되기 시작한다. 더욱이 아슬람교도에게 함락된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던 서방교회는 유대인과 이슬람에게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을 뿐만 아니라 잠시 콘스탄티노플에 머물 때 생긴 다툼이 번져 정복으로까지 번졌고 13세기 초 동방교회와도 완전히 갈라지게 된다. 동방교회 사람들은 니케아로 도망쳐 제국을 건설하고 동방정교회를 만들었다. 교회는 분열되고 교황과 황제는 팽팽히 대립하고 야만족에게 땅이 빼앗기는 때에도 시토회, 왈도파, 프랜시스, 도미니크 수도회 등 거룩한 성도들은 기독교를 유지하고 확장시켰다. 안셀름 같은 대주교를 통해 다시 성행한 철학이론을 기독교 교리와 융합시켜 하나님을 알아가려는 노력도 있었다.

    교황과 황제의 치열한 대립과 다툼

    14세기 교황권과 황제권이 대립하는 중에 보니페이스 8세 교황은 프랑스 국왕에게 살해다아고 그 후임자는 유배생활을 하게된다. 그러다 독살을 당하자 차기 교황들은 회의감이 들어 아비뇽으로 피신하고 교황권을 다시 세우기 위한 노력으로 교황이 3명이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결국 15세기 콘스탄틴 공의회를 통해 동서 교회분리 문제와 가톨릭 교회 개혁문제를 논한다. 또 플로렌스 공의회를 통해 동방정교회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만 실패하고, 교황의 권위가 교회 공의회 위에 있다고 선언한다. 이슬람 교도에 의해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는데 이때 동방학자들이 서로마로 피신하며 가져온 고대 그리스 사본들에 관심을 가지며 이성중심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난다. 16세기 초 마틴 루터를 통해 가톨릭 안에서 종교개혁이 시작된다. 존 칼빈은 기독교 강요를 저술해 개신교 신학에 체계성을 가한다. 라틴어 고수와 성례, 성서해석 등 전통규칙에 저항하며 다양한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고 이로 하여금 종교개혁 물결은 더 커져갔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에 다양한 분파가 생겨 갈등이 조장됐고 저항의식의 본질은 흐려지게 되었다. 영국 교회는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와 서로 진실된 사귐으로 믿음을 표현하며 부패된 교회를 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을 청교도라고 부른다. 이들은 많은 선교활동을 펼쳤다.

    신대륙의 정복전쟁의 폐해와 대각성 운동

    신대륙을 발견해 정복전쟁이 일어나고 있을 때 여전히 교회는 혼란스러웠고 개혁파 안에서도 구원논쟁으로 다양한 교파가 생겼다. 그때 신대륙 안에 다양한 곳에서 대각성운동이 일어났다. 조나단 에드워즈, 진젠도르프, 존 웨슬리 형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가혹한 정복전쟁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했고, 이성에 기초한 이신론을 믿어야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18세기 칸트는 이성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시도와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주장을 펼친다. 낙관주의가 팽배했던 미개척지에서는 집회를 통해 꾸준히 회복운동이 일어난다. 고딕양식 교회, 감정에 호소하는 찬양 등이 그 운동의 결과물이다. 9세기 후반 나이아가라 사경회에서 이성주의에 대항하는 5가지 진리를 발표하며 모더니즘과 맞서 싸웠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칼 바르트는 성경본문 해석과 삶의 적용을 연결시키며 신학에 새로운 미래를 제시했다. 전천년설과 후천년설로 분열된 미국교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초교파적 연대를 구축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이성중심 사상은 완전히 무너졌고 성결교 신자들의 성령체험과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는 근대교회 분위기를 형성해 나갔다. 개인의 체험과 영적 세계를 강조한 신앙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을 알아가려는 시도와 결론지음의 역사

    교회사를 배우며 많은 교리와 분파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관심과 알고자하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중요한 것은 안셀름의 말처럼 “믿기 위 해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는 자세가 아닐까. 세상과 인생의 진리이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그를 완전히 알고자 하는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진리시라는 믿음 가운데서 그의 속성을 하나하나 파악해 나가는 자세가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언제나 외모보다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저 이해하기 위한 순수한 질문을 드리며 세상과 시대의 물음에 부합하는 신학의 발전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딱딱한 형식의 글이 아니라 개인의 생각과 유머까지 적절히 조화시킨 이 책은 굉장히 재밌고 이해하기 쉽다. 성인뿐만 아니라 청소년도 접하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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